
'더 링거' 필자 케이티 베이커, 하워드 벡의 칼럼 "지난 27년 동안의 가장 ‘닉스다운’ 순간 27선"입니다.
https://www.theringer.com/2026/06/01/nba/new-york-knicks-nba-finals-2026-moments-history-trades
이번 주말 뉴저지에서 열린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가장 많이 외친 말은 단연 "야, 닉스가 드디어 파이널에 갔어!"였다. 뉴욕 닉스가 이 정도로 잘했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듣고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를 보며 패트릭 유잉의 우승만을 간절히 바랐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그마치 27년 전 일이다. 닉스가 마지막으로 NBA 파이널에 진출해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1승 4패로 무릎을 꿇었던 1999년에는 아이폰도, 엑스박스도,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퍼스트레이디였고, 루디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이었으며,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MSG) 관중석을 지키던 시절이다.
당시 샌안토니오에는 22세의 괴물 신인 팀 던컨이 있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샌안토니오의 또 다른 22세 괴물 빅터 웸반야마는 1999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현재 닉스의 에이스 제일런 브런슨은 당시 아버지 릭 브런슨을 따라 닉스 훈련장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아기였다.) 래리 존슨의 4점 플레이와 제프 반 건디 감독의 다이어트 콜라 이후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물론,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MSG 주변에서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1999년의 영광을 기억하는 닉스 팬들에게 샌안토니오와의 파이널 리매치는 지난 27년간의 수많은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 암흑기였지만, 이제는 나름의 추억이 된 순간들이다. 드래프트 잔혹사, 근거 없는 낙관론, 케빈 녹스가 올스타가 될 거라 믿었던 착각, 심지어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다가 닉스를 조롱하는 대사에 뼈를 맞았던 기억까지 말이다.
물론 뉴욕 닉스 팬으로 산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마이크 브린과 월트 "클라이드" 프레이저의 명품 중계를 매일 들을 수 있고, J.R. 스미스가 상대 선수의 운동화 끈을 풀어버리던 황당한 장면을 보며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 안토니오 맥다이스 같은 저물어가는 스타들에게 실망하고, 레이먼드 펠튼 같은 선수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야 했던 잔혹한 시간도 버텨내야 했다.
지난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닉스는 매년 답이 없는 팀이자 잃어버린 희망에 가까웠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팬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고 있으며, 봄이 깊어갈수록 경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파이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여기까지 오는 길은 참으로 대책 없고 극적이었다.
이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닉스 전담 기자로 활동했던 하워드 벡 기자와 함께 MSG의 27년 역사적 순간들을 되짚어보았다. 좋았던 순간과 끔찍했던 순간을 모두 버무린,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끈 27가지 장면이다.
1999년: 닉스의 드래프트 잔혹사… 프레데릭 바이스라고?
케이티 베이커: 20세기 말 뉴욕의 스포츠 라디오 방송(WFAN)은 퀸즈 출신의 대학 최고의 수비수 론 아테스트에 대한 찬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1999년 6월 드래프트 당일, 직전 시즌 동부 콘퍼런스 우승팀인 닉스의 15순위 지명 차례까지 아테스트가 남아있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닉스는 모두의 뒤통수를 치고 프랑스 출신의 218cm 센터 프레데릭 바이스를 지명했다. 지명 당사자였던 아테스트조차 황당해하며 "그 친구 본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른다. 좋은 선수일 수도 있겠지만, 패트릭 유잉은 이제 갈 때가 됐고 무릎도 망가졌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돌이켜보면 잔인하지만 정확한 진단이었다.
2000년: 레지 밀러, 유잉 시대를 끝내다
케이티 베이커: 1985년 '얼어붙은 봉투' 논란(농담이다, 아니 진실일지도?) 속에서 화려하게 시작된 패트릭 유잉의 시대는 2000년 9월 20일 시애틀 슈퍼소닉스로의 4각 트레이드와 함께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몇 달 전인 5월, 플레이오프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앙숙 레지 밀러(인디애나 페이서스)가 4쿼터에만 폭발하며 34점을 퍼부어 닉스를 탈락시켰고, 이와 함께 닉스의 한 시대도 끝이 났다.
2001년: '앨런 휴스턴 룰'의 역설
하워드 벡: 닉스가 무릎이 망가진 앨런 휴스턴에게 6년 1억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했다. 결국 NBA는 몇 년 후 팀당 한 번씩 고액 연봉자의 계약을 샐러리캡에서 제외할 수 있는 사면 조항을 신설했는데, 이 규정은 아예 '앨런 휴스턴 룰'로 불렸다. 진짜 코미디는 닉스가 이 규정을 정작 휴스턴이 아닌 '정크야드 독'이라 불리던 제롬 윌리엄스를 방출하는 데 썼다는 점이다. 과연 닉스다운 행정이었다.
2003~2008년: 뒷골목식 마구잡이 영입의 시작
하워드 벡: 아이재아 토마스 단장은 "뉴욕에서는 리빌딩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몸값만 비싸고 흠집 있는 스타들의 잔여 계약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MSG를 부실 채권 하우스로 만들었다. 스테판 매버리, 페니 하더웨이, 팀 토마스, 자말 크로포드, 에디 커리, 제일런 로즈, 스티브 프랜시스, 잭 랜돌프 등이 거쳐 갔다. 여기에 자레드 제프리스, 제롬 제임스 같은 롤플레이어들에게도 오버페이를 남발했다. 5년 동안 닉스는 리그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면서 가장 많이 패한 팀이었다.
2004년: 림을 가르지 못한 스타
케이티 베이커: 2004년 2월 <ESPN 더 매거진>의 표지는 참으로 위풍당당했다. "스테판 매버리와 아이재아 토마스가 동부 콘퍼런스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카피와 함께였다.
정답은 '아니오'였다. 그들은 동부는커녕 자신들도 구원하지 못했다. 매버리와 토마스가 함께한 시절 닉스는 승률 5할을 넘겨본 적도, 플레이오프에서 단 1승을 거둔 적도 없다. 대신 구단 역사상 최악의 막장 드라마를 집필했다. 2005-06시즌 지휘봉을 잡았던 래리 브라운 감독 시절이 정점이었다. 매버리는 브라운을 싫어했고, 브라운은 토마스를 증오했으며, 토마스는 둘 다 미워했다. 중간에 영입된 스티브 프랜시스는 마버리와 손잡고 브라운 감독을 함께 왕따 시켰다.
2006년: 성희롱 소송 사건
하워드 벡: 이 시기를 가장 잘 요약한 것은 2007년 데이비드 스턴 당시 NBA 총재의 일침이었다. 그는 닉스를 향해 "지능적인 경영의 모델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구단주 제임스 돌란이 구단 여성 임원이 제기한 성희롱 소송을 합의로 끝내지 않고 법정까지 끌고 가 진흙탕 싸움을 벌인 직후였다. 배심원단은 구단에 1,160만 달러의 배상금 판결을 내렸고, 아이재아 토마스가 성희롱을 저지른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법정 증언 과정에서 매버리가 구단 인턴 사원과 차량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까지 폭로되며 구단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2006년: 175cm 네이트 로빈슨, 229cm 야오밍을 찍어 누르다
케이티 베이커: 암흑기라 해서 매번 끔찍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짜릿한 블록슛 하나만큼은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2008년: 시카고를 꺾다!… 마이크 디앤토니 영입전에서만
하워드 벡: 2008년 마이크 디앤토니는 피닉스 선즈에서 '7초 이하 공격'으로 리그를 뒤흔든 가장 핫한 감독이었다. 시카고 불스가 그를 간절히 원했지만, 승자는 거액을 베팅한 닉스였다. MSG에는 오랜만에 낙관론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약효는 7초도 가지 못했다. 디앤토니는 부임하자마자 매버리를 전력에서 배제했고, 이후 4년 동안 자신의 전술을 수행할 '스티브 내시의 대체재'를 찾지 못해 헤맸다. 마침내 2012년 '제레미 린'이라는 해답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린 디앤토니 감독은 '린새니티'의 열기가 막 피어오르던 2012년 3월 자진 사퇴했다.
2009년: 코비 브라이언트의 MSG 61폭격
케이티 베이커: 닉스가 슈퍼스타 영입에 실패하고 헤매는 동안, 리그의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인 MSG를 자신들의 독무대로 삼았다. 2009년 코비 브라이언트가 닉스를 상대로 61점을 퍼부으며 MSG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을 때, 상대 팀으로서 속이 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몇 일 뒤 르브론 제임스가 52점을 퍼부었고, 이후 스테판 커리의 외곽포 폭격, 10년 뒤 제임스 하든의 61점 타이기록까지 닉스의 안방은 늘 상대 스타들의 놀이터였다.
2010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닉스가 돌아왔다!" (말만)
하워드 벡: 닉스는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중 한 명을 잡기 위해 2년간 샐러리캡을 비우며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 세 명은 마이애미 히트에서 뭉쳤고, 닉스에게 남겨진 카드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뿐이었다. 당시로서는 훌륭한 대안이었다. 디앤토니 감독과 피닉스 시절 전성기를 보낸 올스타 빅맨이었기 때문이다. 10년간 거절만 당해온 닉스를 선수 본인이 직접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욕은 열광했다. 입단식에서 스타더마이어는 "닉스가 돌아왔다"라고 선언했고, 잠시나마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재발했고, 닉스가 54승을 거두며 반짝했던 2012-13시즌에 정작 스타더마이어는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했다.
2011년: 카멜로 앤서니의 화려한 착륙, 그리고 고립
하워드 벡: 스타더마이어가 닉스의 자존심을 살렸다면, 카멜로 앤서니는 팀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덴버 너기츠와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에 입성한 멜로는 팬들을 열광시키며 동부의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서는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구단주 제임스 돌란이 트레이드 마감 직전 협상에 직접 개입해 덴버가 요구하는 유망주와 지명권을 퍼주는 바람에 팀 로스터가 껍데기만 남게 된 것이다. 이에 실망한 도니 월시 단장은 사표를 던졌다. 앤서니는 디앤토니 감독과 불화를 겪었고, 스타더마이어와는 동선이 겹쳐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멜로가 활약한 6시즌 동안 닉스는 플레이오프에 단 3번 진출해 고작 1개 시리즈만 승리했다. 2017년 9월 그가 오클라호마시티로 트레이드될 때쯤, 팬들은 그의 느리고 단조로운 아이솔레이션 플레이에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2012년: 전 세계를 뒤흔든 '린새니티'의 열기
하워드 벡: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닉스 팬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제레미 린이 활약한 3주일의 기적 같은 시간이 단연 1위일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날 것 그대로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데런 윌리엄스를 압도하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덕 노비츠키 앞에서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으며, 토론토전에서는 짜릿한 위닝샷까지 터뜨렸다. 하지만 무릎 부상이 겹치며 열기는 이내 식었고, 자신을 지지해 주던 디앤토니 감독이 떠나자 입지도 좁아졌다. 결국 돌란 구단주가 휴스턴 로케츠의 독소 조항이 담긴 계약 제안에 매치하기를 거부하면서 린은 뉴욕을 떠났다. 이에 실망한 많은 팬이 닉스 응원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2012년: 소화전 유리창과 맞바꾼 플레이오프
에디 커리는 심장 비대증으로 고생했고, 쿠엔틴 리처드슨은 척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2012년 마이애미 히트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패배 후 분을 이기지 못해 락커룸에 있던 소화전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왼손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락커룸으로 들어오는 막장 드라마가 연출됐다. 팀이 잘 돌아갈 때 꼭 이런 황당한 악재가 터지는 것이 닉스의 매력이었다.
2013년: 안드레아 바르냐니 잔혹사
케이티 베이커: 2013년 여름 토론토 현지 언론은 "자신의 팀에 쓸모없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능력인데, 상대 팀이 돈까지 줘가며 사가게 만드는 것은 예술의 경지"라며 닉스를 조롱했다. 사연인즉슨, 닉스가 토론토의 희대의 1순위 버스트 안드레아 바르냐니를 데려오기 위해 마커스 캠비, 쿠엔틴 리처드슨, 스티브 노박에 더해 미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1개와 2라운드 지명권 2개를 퍼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이후 닉스가 저지른 전형적인 이해 불가능한 트레이드"라고 혹평했다. 실제로 바르냐니는 뉴욕에서의 두 시즌 동안 허무맹랑한 펌프 페이크에 이은 덩크 실패라는 기이한 명장면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2013년: 스티브 밀스의 회전문 인사
하워드 벡: 2013년 9월 스티브 밀스가 닉스의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팬들은 경악했다. 트레이닝 캠프 개막 직전이었고, 전임 글렌 그룬월드 단장이 멀쩡히 일하고 있었으며, 밀스는 5년 전 성적 부진과 경영 실패로 구단에서 문책성 경질을 당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인 결정과 잦은 프런트 교체는 돌란 구단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닉스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8명의 단장과 10명의 감독을 갈아치웠다. 밀스의 사장 재임은 짧았다. 구단은 명망 높은 필 잭슨을 모셔오기 위해 그를 강등시켰으나, 필 잭슨이 3년간 팀을 망쳐놓고 잘리자 다시 밀스를 사장으로 복귀시키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2014년: '젠 마스터' 필 잭슨의 대실패
하워드 벡: 필 잭슨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오직 돌란 구단주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발상이었다. 돌란은 유명인이거나 예스맨만 고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닉스 출신의 전설이자 11개의 우승 반지를 가진 잭슨은 전자에 완벽히 부합했으나, 프런트 경영 경험이 전무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감독 경험이 없는 데릭 피셔를 사령탑에 앉혔고, 노쇠한 호아킴 노아에게 4년 7,200만 달러라는 악성 계약을 안겼으며, 기행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를 언론을 통해 공개 저격하며 불화를 자초해 놓고, 정작 계약서에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넣어 처분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업적은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지명한 것뿐이었고, 또 다른 상위 픽이었던 프랑크 닐리키나는 희대의 폭망 픽이 되었다.
2015년: 데릭 피셔 감독의 난투극 극장
케이티 베이커: 만약 역대 닉스 감독 중 한 명과 주먹다짐을 벌일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겠는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나 악바리 제프 반 건디 감독은 피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존 스탁스를 벤치로 내쫓았던 돈 넬슨 감독의 멱살을 잡고 싶지만 말이다.
2015년 10월 프리시즌 기간에 실제 행동으로 옮긴 선수가 있었다. 바로 맷 반스였다. 상대는 당시 필 잭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닉스를 이끌던 데릭 피셔 감독(재임 기간 40승 96패)이었다. 사연은 피셔 감독이 반스의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와 데이트를 즐기다 반스에게 딱 걸린 것이다. 반스는 95마일(약 152km)을 차로 질주해 피셔를 두들겨 패버렸다. 당시 닉스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이 막장 '사랑의 트라이앵글' 난투극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7년: 찰스 오클리 체포 사건과 돌란의 기행들
케이티 베이커: 허슬 플레이로 뉴욕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전설적인 블루워커 찰스 오클리가 2017년 경기 도중 돌란 구단주의 지시를 받은 경호원들에 의해 관중석에서 강제로 끌려 나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클리는 경찰에 연행되었고, 이후 수년간 구단과 법정 공방을 벌이며 MSG 출입 금지 명단에 올랐다.
돌란 구단주가 벌인 기행과 감정 싸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닉스의 전권을 잡은 이후 그는 끊임없는 불화와 공작, 뒤끝 있는 행동으로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대표적인 사건들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 2003년 경기 도중 라트렐 스프레웰에게 공개적으로 욕설을 들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스프레웰은 MSG의 VIP 귀빈이다)
- 2013년 토론토의 마사이 우지리 단장에게 카멜로 트레이드 때 '사기당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카일 라우리 트레이드를 막판에 엎어버림
- 2015년 성적을 비판하는 오랜 팬에게 "닉스 응원하지 말고 브루클린 네츠로 꺼져라"라는 막말 이메일을 보냄
- 2019년 경기장에서 자신을 향해 "팀을 매각하라(Sell the team!)"고 외친 팬을 영구 출입 금지시키고 방송에 나와 "기습 공격을 당했다"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함
- 2020년 골수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전용 출입구 이용을 막아 망신을 줌
-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당시 NBA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BLM(Black Lives Matter) 지지 성명 발표를 거부함
- 자신에게 비판적인 변호사나 인물들을 MSG에 들어오지 못하게 안면 인식 기술을 동원해 감시하는 좀생원 같은 행정을 펼침
2017년: 프랑크 닐리키나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
케이티 베이커: 수십 년간 고난의 행군을 이어온 닉스 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인 선수가 조금만 가능성이나 근성, 혹은 선한 인품을 보여주면 눈이 멀어 엄청난 낙관론을 펼치는 버릇이 있다. 윌슨 챈들러, 론 베이커, 민다우가스 쿠즈민스카스 등이 그런 팬심의 수혜자였다. 그중에서도 프랑크 닐리키나를 향한 팬들의 사랑은 종교에 가까웠다. 2017년 당시 미디어나 팬들은 고작 10대였던 닐리키나를 보며 "염세주의에 물든 뉴욕 팬들의 영혼을 치유할 구원자", "그의 수비를 보는 것은 성의(聖衣)로 얼굴을 씻는 것과 같다"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짝사랑이었다.
2015~2018년: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의 3막 극장
케이티 베이커: 닉스 유니폼을 입었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의 세 시즌을 '설마 거짓말이겠지' 싶은 황당한 순위로 매겨보았다.
- 1막 (2015-16시즌): 드래프트 당일,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뉴욕 홈팬들에게 야유 폭탄을 맞음. (에이, 설마 거짓말이겠지!)
- 2막 (2016-17시즌): 필 잭슨 사장이 시즌 종료 후 면담을 거부하고 라트비아로 떠나버린 21세의 포르징기스를 언론에 공개 비난하며 트레이드 매물로 올려버림. (하, 진짜 거짓말이겠지…)
- 3막 (2017-18시즌): 1월 23일,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냄. (진짜 진짜 기쁘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인 2월 6일, 밀워키전에서 전방십자동대(ACL)가 파열됨. (아, 진짜 신이시여 장난치십니까?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2019년: '두 개의 맥스 샐러리 슬롯'의 허상
하워드 벡: 2019년 초, 올스타전에서 카이리 어빙과 케빈 듀란트가 나눈 24초짜리 대화 영상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어빙이 듀란트에게 "맥스 슬롯 두 자리(Two max slots). 이제 때가 됐어"라고 말하는 듯한 입 모양 때문이었다. 팬들은 흥분했다. "어빙과 KD가 뉴욕으로 온다!" 닉스 프런트 역시 그렇게 확신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 영상이 뜨기 딱 2주 전, 포르징기스를 달라스로 급하게 처분하며 샐러리캡에 정확히 '두 개의 맥스 슬롯'을 비워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명의 슈퍼스타가 선택한 곳은 닉스가 아닌 이웃집 브루클린 네츠였다. 충격에 빠진 스티브 밀스 사장은 팬들에게 사과 성명까지 발표해야 했다. 듀란트는 이후 라디오에 나와 "요즘 힙한 선수들은 아무도 닉스로 안 간다"라며 불을 질렀다. 하지만 이 실패는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다. 닉스는 남은 돈으로 줄리어스 랜들을 영입했고, 그는 올스타로 성장했다. (그 랜들은 훗날 칼-앤서니 타운스 트레이드 칩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반면 브루클린의 KD-어빙 시대가 어떻게 파국으로 끝났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2021년: "트레이 영 꺼져라!" 잔혹사의 서막
케이티 베이커: 27년의 파이널 잔혹사 안에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한 더 어두운 암흑기가 존재했다. 줄리어스 랜들을 필두로 알프레드 페이튼, 널런스 노엘 같은 눈물겨운 라인업으로 마침내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을 때 뉴욕 전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빌런 트레이 영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1차전 종료 0.9초 전 결승 플로터를 성공시킨 영은 MSG 관중석을 향해 '쉿' 세레머니를 날렸고, 시리즈 내내 평균 29.2점 9.8어시스트로 닉스를 유린하며 4승 1패로 탈락시켰다.
영의 닉스 킬러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해 봄의 강렬한 기억은 뉴욕 팬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얼마 전 닉스가 이번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을 때,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팬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트레이 영을 향해 "F*** Trae Young!" 떼창을 외쳤다. 과거 아이스하키 뉴욕 레인저스 팬들의 "포트빈은 쓰레기다!"를 잇는 뉴욕 전통의 뜬금없는 증오 찬트가 탄생한 순간이다.
2023년: 돌란 구단주, 토론토 랩터스를 고소하다
하워드 벡: 코트 위에서 성적이 나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돌란 구단주의 대외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2023년, 닉스는 구단 직원이 토론토로 이직하면서 기밀 전술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토론토 랩터스 구단을 고소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이 소송은 2025년이 되어서야 취하됐다.) 돌란의 호전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와 토론토의 WNBA 신생팀 창단에 홀로 반대표를 던졌고, NBA 사무국의 예산안과 새로운 이사회 의장 선출에도 반대했다. 스몰마켓 팀들을 돕는 리그의 수익 공유 시스템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으며, 애덤 실버 총재가 특정 구단을 편애한다고 저격했다. 코트 위에서 닉스는 드디어 정상적인 강팀이 되었지만, 프런트 조직으로서의 MSG는 여전히 시끄러운 상태다.
2025년: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재림과 트라우마
케이티 베이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암흑기 시절 닉스 팬들은 늘 "1990년대의 치열했던 닉스 농구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2025년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 원숭이 손의 저주처럼 그 시절의 잔혹한 기억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30년 전 레지 밀러가 8.9초 만에 8점을 퍼부으며 뉴욕 팬들을 침묵시켰던 것처럼, 2025년의 인디애나는 1차전 종료 3분을 남기고 14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었다. 당시 중계석에서 레지 밀러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연장 끝에 1차전을 가져갔고, 결국 시리즈까지 폭파시켰다. 타이리스 할리버튼이 코트 위에서 레지 밀러의 빙의한 듯한 제스처를 취할 때, 90년대 올드팬들은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묘한 향수를 동시에 느껴야 했다.
2025년: 톰 티보도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하워드 벡: 톰 티보도 감독은 5시즌 동안 팀의 기강을 잡고 체질을 개선하며 승률 .565를 기록했다. 닉스를 2년 연속 50승 고지에 올렸고, 25년 만에 팀을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로 이끌었다. 하지만 구단은 지난 시즌 파이널 진출에 단 2승만을 남겨두고 탈락했다는 이유로 그를 전격 경질했다. 비정상적인 결말이었지만, 21세기 들어 그 악명 높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 버틴 감독(5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에 가까운 업적이다.
2025년: 닉스, NBA 컵(인시즌 토너먼트) 초대 챔피언 등극
하워드 벡: 시즌 중반에 열리는, 축구식 토너먼트를 벤치마킹해 급조된 이 대회 우승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어야 할까. 나 같은 회의론자들은 지난 12월 닉스가 컵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출 때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1973년 이후 그 어떤 우승 타이틀도 구경해보지 못한 닉스 선수들과 팬들에게는 월드시리즈 우승만큼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컵대회 결승 상대가 산안토니오였고, 이는 이번 6월 파이널의 예고편이 되었다. 돌란 구단주는 실버 총재 시위용인지, 아니면 진짜 우승 배너를 기다리는지 구단 체육관에 컵대회 우승 배너 게시를 거부했다.
202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개봉과 닉스의 질주
케이티 베이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승 2패로 몰리며 위기를 맞이했던 지난 4월 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개봉했다. 영화 속에는 뉴욕의 새로운 구세주 칼-앤서니 타운스(KAT)가 햄프턴의 화려한 파티에서 환하게 웃는 카메오로 깜짝 등장한다. 신기하게도 영화 개봉 이후 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서 9연승을 질주했고, 총 득실 마진 +217이라는 NBA 역사상 전무후무한 파괴력으로 상대 팀들을 압도하며 파이널까지 진격했다. 드디어 약속의 땅에 도달한 것이다.
주연 배우 앤 해서웨이는 자신을 "닉스와 OG 아누노비의 광팬"이라고 소개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캐릭터 앤디는 타운스를 만나 "정말 멋진 시리즈였어요. 뉴욕 시민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라며 찬사를 보낸다. 봄철 플레이오프 결과가 어떻게 되든 영화 대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절묘하게 연출된 명장면이다. 뉴욕 닉스가 이토록 짜릿하고 힙했던 적은 27년 만이다. 마침내 봄의 왕좌를 마주한 지금, 뉴욕 팬들은 이 기적 같은 축제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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