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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MLB 수다

말기암 투병 중인 바비 젠크스

by 그리핑 2025. 4. 16.


디 애슬레틱 샘 블럼의 기사 '전 화이트삭스 마무리 투수 바비 젠크스, 말기암 진단 고백: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

https://www.nytimes.com/athletic/6279684/2025/04/15/bobby-jenks-terminal-cancer-white-sox/

한 달 전, 44번째 생일을 맞은 바비 젠크스는 가족에게 텐트를 선물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쓸 수 없는 선물이란 걸 알면서도 부탁했다. 그저 그 의미가 중요했다. 언젠가 몸이 괜찮아지면 유럽을 여행하며 곳곳에서 가족과 함께 캠핑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건 알아요," 장모 케이트 수글리데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을 꺾고 싶지는 않아요."

한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그는 현재 포르투갈에서 아내와 처가 식구들과 살고 있다. 요즘 그의 일상은 병원 들락날락하고 끊임없이 피로를 느끼는 연속이다.

지난 1월 7일, 캘리포니아에 있던 그의 집이 팰리세이즈 산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야구 경력의 모든 기념품이 재가 됐다. 첫 경기 공, 첫 승리, 첫 삼진, 첫 세이브 기록,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젠크스는 이를 "충격적인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그달 말, 젠크스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10월에 폐색전증을 앓은 후 몇 달간 지속된 피로감과 황달로 입원한 끝에, 젠크스는 위암의 일종인 4기 선암(腺癌)을 진단받았다. 암은 이미 다른 장기로 퍼져 있었다.

이는 치료만 가능할 뿐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 질환이다.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 엘레니 치치바코스는 눈물을 흘리며 병실을 뛰쳐나갔다.

"의사가 그에게 그 말을 했을 때 그의 눈에 담긴 슬픔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젠크스의 장인 안토니오 다 쿠냐가 말했다.

젠크스는 이제 집도, 재산도, 평생 모은 돈도, 건강도 잃었다. 의료비를 내기 위해 야구공에 사인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엘레니의 말에 따르면, 몇 년 전 의료보험이 비싸고 건강에 문제가 없어서 보험을 해지했다고 한다. 해외에 사는 상황은 치료비 보장을 받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 강하고 터프한 사나이가 이겨낼 거라는 희망과 시한부 진단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장담하건대, 모든 사람이 매일 죽음에 관해 생각해요," 젠크스가 말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실제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을 뿐이죠."

젠크스는 이 암을 이길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목소리가 약하고 피곤해 보이지만, 이달 초 디 애슬레틱과의 전화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는 건 제 믿음이에요."

그러나 그 믿음과 함께 하나의 현실도 받아들였다.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3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자신의 남은 시간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준비됐어요. 얼마나 오래 걸리든, 끝까지 싸울 겁니다."


젠크스는 화이트삭스에서 단 6시즌 동안만 활약했음에도 통산 세이브 역대 75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는 그의 경력과 구단에 남긴 족적을 다 말해주지 못한다. 구단은 지금도 그를 기념하고 있다.

그는 시카고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큰 체구(현역 시절 키 193cm, 체중 125kg)에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 지난 세기 화이트삭스 유일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마무리한 신인 투수였다.

"바비는 실제보다 더 큰 존재였어요," 오랫동안 화이트삭스의 포수로 활약한 A.J. 피어진스키가 말했다. "그는 마치 폴 버니언(미국 설화 속 거인) 같았어요. 거대한 사람이었죠."

이제 그는 매주 월요일 의사를 만나고, 수요일에 면역치료를 받으며, 가슴에 부착하는 장치를 집으로 가져가 이틀 더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이런 반복적인 치료 일정에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는 11살 아들 제노와 4살 딸 케이트가 집에 돌아올 때를 위해 얼마 안 되는 에너지를 아껴둔다. 모든 걸 이해할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린 아들에게는 이 몇 달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치료와 절망 속에서도, 젠크스는 그 텐트와 그것이 상징하는 희망을 붙잡고 있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제 원동력이죠," 젠크스가 말했다.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갖는 것.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

젠크스는 의사들에게 7월 초에는 절대로 예약을 잡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게 닥친 모든 불행 속에서도, 시카고에 가서 팀 동료들과 함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은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다.

"의사는 그를 멍하니 쳐다봤어요," 수글리데스가 말했다. "그는 의사들에게 '들으세요, 당신이 뭐라든 나는 갈 거예요. 그러니 모든 치료가 그때까지 끝나도록 맞춰주세요'라고 말했어요."

화이트삭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한 지 20년이 됐다. 젠크스가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양팔을 벌렸을 때, 포수 피어진스키가 젠크스의 큰 몸에 달려들어 1대 0 승리와 함께 4-0 시리즈 스윕을 축하한 지 20년이 지났다. 젠크스는 월드시리즈 모든 경기에 등판했다.

엘레니는 야구에 그리 밝지 않다. 남편이 야구를 했다는 건 알았지만, 2015년 팀의 10주년 우승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그가 야구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바비 젠크스는 이 도시의 영웅이에요. 진짜 영웅이죠," 우승팀의 감독이자 사우스 사이드의 전설인 아지 기옌이 말했다.

"바비가 (이번 여름에) 없고, 그를 놀리지 못한다면, 뭔가 이상할 거예요," 피어진스키가 말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요. 바비는 많은 화이트삭스 팬들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으니까요."

피어진스키는 격려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젠크스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화이트삭스 구단에서조차 알기 어려웠다.

지난주 젠크스와 연락한 후, 화이트삭스는 시카고 지역의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 자선단체를 위한 이벤트를 발표했다. 팬들은 젠크스를 기리는 티셔츠를 구매할 수 있으며, 수익금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에 기부된다.

젠크스가 지금처럼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의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첫 소속팀인 에인절스에서 방출돼 웨이버 선수 신분으로 화이트삭스에 왔을 뿐이었다. 2005년 젠크스의 첫 스프링 트레이닝 때, 기옌 감독은 보조 구장에서 강속구를 던지는 신인을 보고 "넌 누구냐?"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고 한다.

기옌은 젠크스의 능력이 아니라,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자신에게 인상을 줄 거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젠크스는 그 우승 시즌의 전반기를 24세의 더블 A 선수로 보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둘 다 은퇴했다. 기옌은 화이트삭스에서 선수로 13년, 감독으로 8년,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팀 해설자로 활동했다. 2005년 월드시리즈에서, 그는 팔을 넓게 벌리고 머리 위로 올리며 불펜에서 젠크스를 부르는 유명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 크고 키 큰 녀석을 불러오라는 의미였다.

젠크스는 그 신체적 특징의 대부분을 잃었다. 병으로 체중, 힘, 체력을 잃었다. 화재로 대부분의 재산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가진 것은 월드시리즈 반지—그의 유산과 옛 팀에서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물리적 증거다.

평소 거친 기옌이 갑자기 엄숙해졌다: "내가 그를 안고, 큰 키스와 포옹을 할 수 있다면," 그가 말했다, "시카고의 모든 사람에게 특별할 거예요."

젠크스의 모든 의료비는 자비로 지출되고 있다. 쓰는 모든 돈은 그들의 저축을 태우고 있다.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집을 임대해 수입을 보충하길 바랐다. 그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젠크스나 그의 아내가 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의 시간과 돈은 그의 치료와 두 자녀에게 쓰이고 있다.

"아무도 이런 상황에 처하길 바라지 않아요," 젠크스가 말했다.

젠크스는 Baseball Assistance Team(B.A.T.)이라는 전직 선수들을 위한 기관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친구이자 전 메이저리거인 대런 드레이포트는 고펀드미(온라인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입원한 젠크스는 모금 활동의 일환으로 병상에서 기념품에 사인했다.

"우리는 확실히 도움이 필요해요," 젠크스가 말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에요.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기념품이 가득 담긴 두 개의 여행 가방이 PastPros 회사 대표와 함께 포르투갈로 운반됐다. 이 회사는 사인회를 주관했다. 팬들은 젠크스가 사인할 공, 야구 카드 및 기타 기념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젠크스는 모든 용품에 다 사인할 수 없었다. 병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는 나중에 마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대신해 다른 선수들이 사인회에 참여하고 있다.

"젠크스와 대결했던 선수들, 그리고 그와 대결한 적이 없거나 만난 적이 없는 선수들까지 이 일에 뛰어들고 있어요," 드레이포트가 말했다. "어딘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되니 좋네요."

젠크스는 재정적 도움이 필요했지만, 돈 외에도 소중한 지원을 받고 있다. 그의 유소년 시절 코치였던 데이브 그림은 지난달 포르투갈까지 날아와 열흘 동안 젠크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수십 년 전, 멘토가 어려울 때 그림의 주머니에 수표를 몰래 넣어준 사람은 젠크스였다. 이제 그림은 단순히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그 호의를 돌려주었다.

"너무 가슴 아픈 상황이에요,"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유소년 팀 전원의 유니폼에 젠크스의 이름을 새겨 넣은 그림이 말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슬픔이죠. 바비 앞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어요. 이게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제가 생각한다는 걸 그가 알아채길 원치 않았거든요."


한편 아내 엘레니는 지난 3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젠크스에게 록스타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은 약 15년 전 애리조나의 재활 센터에서 만났다. 바비는 그의 경력을 끝냈고 거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실패한 수술 후 진통제에 중독됐고, 엘레니는 섭식 장애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젠크스가 아내의 가족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지난 10월 포르투갈로 이주했다. 엘레니와 그녀의 자매, 어머니, 의붓아버지 모두 젠크스를 도왔다.

엘레니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된다. 그녀는 약을 투여한다. 화재로 잃은 집과 재정 문제를 처리하며 캘리포니아로 여러 차례 왕복했고, 자녀들을 돌본다.

그들의 딸 케이트는 아버지가 사인할 물건에 모두 키스한 다음 울기 시작했다. 젠크스 가족은 돈이 필요하지만, 재정적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그냥 솔직하게 (아들에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엘레니가 말했다. "아빠를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아이는 암이 뭔지 알아요."

"그저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어요. 아이들을 안아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에요."

젠크스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해야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의 마음은 미국에서 어머니(젠크스의 전 부인)와 함께 살고 있는, 곁에 없는 네 자녀에게 향했다. 그는 그들을 보지 못하고, 진단 이후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 생각이 나요," 젠크스가 감정에 북받쳐 말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이걸 읽는다면, 내가 매일 너희들을 생각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이 질병의 고통은 신체적인 것을 넘어선다. 정신적으로도 괴롭다. 그는 항암 치료 때문에 갑자기 '열감'이 생겨 이유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올여름이면 젠크스는 시카고에서 프론티어 리그 소속 독립 야구팀인 윈디 시티 썬더볼츠의 감독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직접 선수 구성까지 도운 팀에서 2년차 시즌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대신 온라인 중계로 팀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괜찮을 거야," 화이트삭스 팀 동료이자 친한 친구, 썬더볼츠의 임시 감독인 토비 홀이 말했다. "이겨낼 거야."

그 말을 한 지 몇 초 만에 홀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내 친구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그를 자랑스럽게 만들 겁니다," 홀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냥, 정말 힘들어."

젠크스의 주변 모든 사람에게, 낙관과 말기 진단의 피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시소 타기가 계속된다.

엘레니는 남편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을 내다보는 계획은 없었다—의도적인 선택이었다.

"그저 현재에 머물고 있어요," 엘레니가 말했다. "현재 이외의 것을 생각하는 건 너무 벅차서요. 두려움이나 의심을 갖는다면 그것이 나를 마비시킬 것 같아요."

바비가 진단을 받은 후, 의사들은 그에게 더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말하는 자신의 삶의 종말에 대한 시간표를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의사나 의학적 판단이 그의 앞날을 결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젠크스는 싸우고 있다. 시카고로 돌아가기 위해. 인디 볼 팀을 지도하기 위해. 아버지, 남편, 팀 동료, 친구가 되기 위해. 언젠가 그 텐트를 사용하고, 그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는 걸 안다.

"제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건 많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젠크스가 말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든 그건 자유예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라며 무시할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도 세상엔 많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은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요. 그리고 지금, 그게 우리가 주어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