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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MLB 뉴스

수염 금지 내규 완화한 양키스

by 그리핑 2025. 2. 22.

양키스가 수염 금지 규정을 완화했다(사진=Bing AI)


메이저리그 최고의 보수 구단으로 알려진 뉴욕 양키스가 마침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구단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수염 금지 규정을 49년 만에 완화한 것이다. 전통과 경쟁력 사이에서 양키스의 선택은 후자였다.

할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는 22일(한국시간) 플로리다주 탬파의 스프링캠프에서 "오늘부터 '단정한 수염'을 허용하는 것으로 팀 내규를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976년 그의 아버지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제정한 엄격한 용모 규정을 처음으로 공식 수정한 결정이다.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수염 금지 규정을 고수해왔다. 선수들은 깔끔하게 면도를 하거나 콧수염만 기를 수 있었고, 머리는 칼라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야 했다. 이런 규칙은 군대 출신이었던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규율 중시 철학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동안 양키스로 이적한 선수들이 수염을 깎는 의식은 구단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의 타일러 케프너 기자는 "조니 데이먼, 제이슨 지암비 같은 '수염 농부'들도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면도기를 들었던 것은 구단 정체성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데이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통은 지켜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번 결정의 가장 큰 배경은 선수 영입 경쟁력 확보였다. 할 스타인브레너는 "우리가 원하는 선수, 우승을 위해 필요한 선수가 이 내규 때문에 양키스에 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양키스는 과거 2013년 사이영상 수상자 데이비드 프라이스가 규정 때문에 양키스 입단을 거부한 전력이 있다. 같은 해 올스타 마무리 브라이언 윌슨도 자신의 검은 수염을 깎기 싫어 양키스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2009년 CC 사바시아는 처음에 면도 규정 때문에 양키스 입단을 망설였다가 7년 1억6100만 달러(2254억원)의 거액 계약으로 마음을 바꿨다.

올 오프시즌에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입한 마무리 데빈 윌리엄스가 수염을 깎아야 해서 낙담했고, 스프링캠프 팀 사진 촬영일에 가벼운 수염을 기르며 내규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전 양키스 선수들이 트레이드된 새 팀에서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등장하는 모습도 양키스 팬들에게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선수노조 사무총장이자 전 양키스 선수인 토니 클라크는 현재 "유럽 저택의 생울타리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수염"을 기르고 있다. 캠프 소식을 들은 그는 "얼굴에서 자라는 것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다"며 유머러스하게 반응했다.

다만 양키스는 모든 형태의 수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단정한 수염'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며, 머리 길이에 관한 규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선수들에게 "덕 다이너스티 출연진처럼 덥수룩한 수염은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번 결정은 부자(父子) 구단주의 경영 스타일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케프너 기자는 "조지는 충동적이고 급했지만, 할은 신중하고 절제된 모습"이라며 "조지는 혼란의 문화 속에서 번창했지만, 할은 안정을 중시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1981년 월드시리즈 패배 후 대중 사과문을 발표하고 레지 잭슨을 내보냈으며 다음 시즌 2주 만에 밥 레먼 감독을 해고했다. 반면 할 스타인브레너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패배 후에도 애런 분 감독과 계약을 연장했고, 브라이언 캐시먼은 단장 자리를 28년째 유지하고 있다.

한편 양키스는 여전히 일부 전통은 고수하고 있다.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넣지 않고, 7회 중간에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연주하며, 구장 명칭권을 팔지 않고, '시티 커넥트' 유니폼도 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유니폼에 광고 패치를 달기 시작했고, 올드타이머스 데이는 유지하면서도 올드타이머스 경기는 중단했다.

전 오클랜드 투수 댈러스 브레이든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이 과거처럼 소속감이나 '양키스의 일원'이라는 의미를 중요시하지 않게 됐다"며 시대 변화를 지적했다. 할 스타인브레너도 "현 세대에게 얼굴 수염은 개성의 일부로 중요하며, 이는 이미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스타인브레너는 이번 결정이 아버지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였다"라며 "이런 규정이 선수 영입 기회를 줄인다면, 아버지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변화에 더 개방적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6년부터 양키스에서 근무해온 캐시먼 단장은 "때가 됐다"며 "우리는 거대한 해군 순양함과 같아서 방향을 바꾸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미군 전역 후 구단을 군대식으로 운영했다면, 할 스타인브레너는 비즈니스와 경쟁력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적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