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4번째 외야수 정도일 것"이라던 평가는 완전히 빗나갔다. 22일(한국시간) 미국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스즈키 이치로는 데뷔 당시 '작은 체구의 슬랩 히터'라는 회의적 시선을 뛰어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6078097/2025/01/22/ichiro-mariners-hall-of-fame-first-ballot/
디 애슬레틱의 채드 제닝스 기자는 이치로의 2001년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회고하며 당시 그를 둘러싼 의구심과 극복 과정을 조명했다. 일본에서 7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음에도, 175cm의 작은 키와 독특한 타격 메커니즘, 땅볼 타구가 많은 타격 스타일은 '홈런의 시대'였던 MLB에서 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애틀 타임스의 베테랑 야구 기자 래리 스톤은 "회의론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고 회상했다. 메이저리그의 강속구에 압도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고, 동료들도 그의 독특한 기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루 피넬라 감독은 이치로의 당겨치는 능력을 의심했다.
1999년 일본에서 열린 MLB 올스타팀과의 교류전에서 이치로는 7경기 타율 0.380에 7차례 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선 4번째 외야수 정도"라고 평가절하했고, 한 메이저리거는 그를 "작은 슬랩 히터"라고 비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으로 이 순간을 준비해온 이치로는 자신만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시애틀로 향하는 여정이 쿠퍼스타운으로 이어질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치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2001년 스프링캠프 초반, 회의론자들의 예측이 맞아 보였다. 3월 9일까지 타율 0.200에 그쳤고, 케리 우드를 상대로 친 2루타도 3루선을 따라가는 땅볼이었다. 시애틀 3루수 데이비드 벨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치로가 빅리그 공에 밀리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치로를 좋아했다. 켄 그리피 주니어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연달아 잃은 시애틀은 브렛 분, 존 올러루드, 에드가 마르티네스 같은 베테랑 타자들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재건했다. 이치로는 이 그룹에 잘 어울렸다.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했으며, 농담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준비 과정도 꼼꼼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3월 말, 타율이 0.300대로 올랐음에도 거의 모든 타구가 좌측으로 향하는 것에 의구심을 느낀 피넬라 감독이 이치로에게 '우측으로도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치로는 담담하게 '때때로 그럴 수 있다'고 답한 뒤 그날 오후 우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쳤다. 덕아웃으로 돌아온 이치로는 피넬라에게 "원하시던 게 이런 거였나요?"라고 물었고, 감독은 남은 스프링캠프 동안 이치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다.
브렛 분은 "그는 누군가에게 인상을 주려고 애쓰는 젊은 선수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고 회상했다.
시즌이 시작되고 이치로는 모든 의심을 잠재웠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첫 세 타석은 무안타(두 번의 땅볼과 한 번의 삼진)였지만, 후반 두 타석에서 안타를 쳐냈다. 그리고 이후 39경기 동안 무안타는 단 한 번뿐이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50, 242안타(메이저리그 최다), 52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이치로의 타격 폼은 미국에서도 독특했다. 투수가 투구 동작을 시작할 때 왼발로만 체중을 지탱하며 오른발을 들어 올려 뒤로 넘기는 진자 운동과 같은 모션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를 과장된 토 태핑으로 수정했지만, 여전히 타격과 동시에 타석을 박차고 나가는 독특한 스타일을 유지했다.
브렛 분은 이치로가 팀 동료 마이크 캐머런과의 달리기 경주에서는 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홈에서 1루까지는 메이저리그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오클랜드 선발 마크 멀더는 "미구엘 테하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수비했다. 이치로의 타구는 달랐다"고 회상했다.
디아몬드마인드 베이스볼 시뮬레이터의 창시자 톰 티펫은 일본 야구가 트리플A 수준이라는 통념에 따라 이치로의 성적을 조정해 타율 0.290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치로는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치로는 1994년 20세의 나이로 일본 프로야구 첫 타격왕을 차지했을 때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던지는 공이라면 어떤 공이든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마 0.250밖에 못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상은 정확히 100포인트 낮았다.
이제 이치로는 MLB 명예의 전당에서 단 한 표 차이로 만장일치를 놓쳤지만, 타자 중 최고 득표율로 입성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작은 체구의 슬랩 히터'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쿠퍼스타운의 전설이 된 이치로의 여정은 또 하나의 영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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